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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Bookcc)

2022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불장난』- 손보미

by 토마토 레드 2022. 3. 6.

 



『불장난』이라는 작품은 한 소녀의 불장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녀의 불장난은 동네 야산이나 집 안방에서 하는 불장난이 아니라 고작 아파트 옥상에서 한 불장난이다. 여기서 '고작'이라고 표현한 것은 초등학생 소녀의 여리고 소심한 성격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와 아빠가 실수로 흘린 가스라이터로 자신의 연습장을 태우는 정도의 가벼운 행태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이 불장난이 끝나게 된 것은 자신의 일을 '소방 관련 글짓기대회'에 낸 이후, 어쩌다 그 글이 상을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생각해도 소소한 불장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불장난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소녀에게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시각과는 간극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어린 소녀는 엄마와 이혼하고 엄마와 결혼생활을 하던 중에 사귀었던 직장동료(현재는 퇴직교사)와 재혼한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초등학교 오학년 쯤의 아이이다. 아직도 새엄마를 '그녀'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적 관계에 대한 배려가 익숙하지 않으며, 엄마를 밀어낸 아빠의 일탈에 대해 바닥 모를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 반감에는 엄마에 대한 상실감, '그녀'와 아빠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이 반감은 또래와의 학교생활에도 이어진다. 일탈에 대한 반감은 일탈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 예를 들어 중학생 오빠들과 또래아이들이 학교 당직실에 모여서 음악을 듣거나 춤을 추는 따위에도 적용된다. 어느날 소녀는 결국 당직실 문을 열게 된다. 당직실에는 그저 음악과 큰 거울 앞 춤사위밖에 없었고, 소녀는 또래아이가 머리에 스타일리싱 해주는 손수건을 감고 정신없이 돌아나온다.
당직실을 나온 소녀는 또래아이가 묶어준 손수건을 풀어 당직실 근처에 있는 소각장에 던져버린다. 소녀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을 함께...


이때부터 소녀는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되고 방학을 맞이하면서부터는 집안에서도 점점 주변인으로 겉돈다. 그녀(새엄마)가 외출하면서 남기는 '제발 밥은 좀 먹어라'라고 쓰인 메모지를 들고 싱크대에서 태우게 된다. 그 메모지 불장난은 강도가 더해져 스프링 노트의 종이를 몇 장 찢어서 태우고 결국 25층 옥상을 계단으로 올라가 여름방학 동안 틈만 나면 그 두꺼운 연습장을 태우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소녀는 불장난을 하는 동안은 내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 불은 절대 내 신체나 정신을 해할 수 없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불을 피우는 동안은 소녀는 그 어디도 아프지 않고 지금까지 느껴온 수치심과 굴욕감, 이물스러움과 꼴사나운 천진함 등 위화감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고 되뇌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불장난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장소설이라는 표현이 다소 옛스럽긴 하지만, 한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세계가 파괴되어야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성장을 바라보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헤르만 헤세가 표현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무튼 소녀의 '불태움'이라는 행위는 두 가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내부에 남아있는 반감과 위화감을 태우는 것이었고, 하나는 자신의 외부에 있는 일탈의 대상들이 가진 '이질성'을 태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소녀는 보편과 특수, 윤리의 다면성, 관계의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갈 것이다. 자아와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점의 한 아이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에서 받은 자신의 상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간접적으로 느낀 곳에서부터 머물지않고 성장한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불장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아픔과 수치심, 위화감을 태워버리고 승화하여 새로운 곳을 도약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