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작가인 경하는 1980년 5월에 일어났던 광주학살에 대한 자료 준비를 하면서부터 폭력이 담긴 악몽에 시달린다. 광주학살 관련 책을 낸 이후에도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시간'울 보내며, 결국 직장과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혼자서 지내게 된다. 혼자 지내는 동안에도 악몽은 계속 되어 불면과 대인기피증, 편두통, 환각증세까지 보인다.
그런 일상에 찌들어 살던 중, 어느 초겨울 아침, 제주에 사는 20년지기이자 동갑내기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인선에게서 문자가 온다.
서울에 있는데 와줄 수 있냐고.
갑작스런 소식에 찾아간 곳은 봉합수술전문병원이다. 나무절단작업 중 전기톱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잘렸고, 봉합수술을 위해 서울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선은 경하에게 지금 바로 제주로 가서 자신이 키우는 앵무새 아마의 생사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길로 경하는 제주로 향한다. 윈드시어때문에 어렵사리 공항에 내리긴 했으나 폭설로 인해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시야를 가리는 폭설 속에서 건천에 빠져 의식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 공방에 도착한다. 그런데 아마는 이미 죽어있다. 죽은 아마를 마당 한가운데 있는 종려나무 밑에 묻어주고,
방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뉘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잠이 든다.
얼마나 잤을까,
인기척에 눈을 뜨는데, 그 자리에 인선이 와있다. 산사람인지 영혼인지 분간이 언 되는 혼미한 상태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고, 1948년 4월부터 시작해 1961년까지 제주 집단학살과 관련한 각종 자료들을 함께 읽어나간다.
자료들을 읽고 난 두 사람은 4년 전 둘이서 같이 하기로 했던 촬영작업 장소를 향하고,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던 끝에 두 사람은 눈 위에 눕는다.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는지 경계가 흐린 가운데
눈밭에 누운 두 사람 위로 눈은 지향없이 쌓인다.
이 작품은 제주 집단학살의 실상을 경하와 인선이라는 두 인물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정치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제주의 4월을 이야기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도민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정의를 내리고 정리하면 마무리된 것으로 여기는 방식으로 과거의 역사를 묻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고의 방식과 현실비현실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줄거리는 잠시도 우리의 눈을 행간으로부터 떼어놓지 못하게 한다.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들, 예를 들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가 어떻게 한 인간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광주학살을 다룬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의 연장선상에서 그 억압의 기제를 국가폭력으로 확장시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품제목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까?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첫째는 아픔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잘린 후 정상적인 손가락을 되찾기 위해선 봉합 주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다.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신경이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주의 아픔을 극복하는 길은 끊임없이 그 아픔을 상기하고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작품에서는 말하고 있다.
둘째는 돌아봄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에는 두 번의 돌아봄이 나온다.
첫 번째는 해일과 폭우로 잠기는, 자신의 마을을 돌아보다 돌이 된 여인의 돌아봄이고,
두 번째는 인선의 외삼촌이 목포항에 끌려간 때, 경찰들에 의해 강보째 부두의 젖은 바닥에 버려지는 죽은 젖먹이를 향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돌아봄이다.
이 두 번의 돌아봄은 미련이나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혈연의 유무와 관계없이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사랑에 대한 것이자 존중 받아야 할 생명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인선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역사에 대한 것도 아니다.
아픔과 작별하지 말고, 돌아봄과 작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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